전남 강진에 갔다가 참 뿌듯한 경험을 했다.
곳곳에 어린 다산 정약용 선생의 흔적들을 말로만 듣다가 눈으로 볼 좋은 기회가 됐다.
도암면 만덕리의 다산초당이나 다산교육관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시인 윤정현이 광주에서 낙향하여 기거중인 해남윤씨 종택이다.
이틀밤을 보내면서 참으로 깊은 잠을 잤던 것 같다.
한옥으로 지어진 화장실의 삐걱거리는 나무문 말고, 밤이면 고택 뒤편의 대나무밭에서 고개를 내미는 달빛이 그처럼 영롱하고 고울수가 없다. 정확히 기와지붕의 한 가운데를 점찍어 누군가 톡 불어대면 튀어나오는 양 달은 그렇게 밤을 지켰다.
집을 지은 목수는 그걸 어떻게 계산했을까
시인이 기거하는 종택 지붕 한 가운데를 기점으로 빼꼼히 달이 뜨고 있다. 마치 종택을 지켜보는 듯 한 묘한
여운이 느껴진다.
전남 강진군 도암면 항촌리에 소재한 이 종택은 해남윤씨 22세 윤광택(尹光宅 1732.2.25-1804.12.13)의 옛 생가다. 도암 항촌에서 태어나 자수 성가 하였으며 마을의 증흥조이기도 하다.(이하 강진신문_양광식 강진문화재연구소의 글). 조부인 윤홍좌(1686-1738)가 만년에 건물을 지어 소대정(小坮亭)이라 하고 광택은 명발당(明發堂)이라 하였다.
200년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윤광택公의 생가. 최근에는 그의 후손 시인 윤정현이 기거하고 있는데 집이란 사람이 살고 오가야 생명을 유지하는가 보다. 수년 동안 비어있던 이 종택에 윤 시인이 기거하면서 여기저기 조금씩 손을 보고 있단다.
마당에는 화초도 심고 돌담도 쌓고 보기좋게 꾸밀 참이다.
내년즈음에는 황량하다시피한 이곳이 200년전 그 시절의 모습으로 회생하길 기대해본다.
빛이 반사되어 명발당에 대한 소개글이 보이지 않으나 해남윤씨집안과 사돈지간이었던 다산 정약용이 가끔 놀러와 보냈다는 곳이기도 하다. 다산초당에서 차로 5분거리다.
윤광택의 아들 윤서유(書有 1764.11.28-1821.7.1)가 태어났고 손자 윤영희(榮喜 1795.4.25-1856.8.23)도 이곳 명발당에서 태어났으며 윤영희는 다산 정약용의 사위다. 다산선생의 딸과 윤영희가 이곳에서 혼례를 올리기도 했다.
마당 한켠에 자리한 한옥화장실. 그 옆에 선 은행나무도 수령이 족히 100년 이상은 되어 보인다. 오밤중이라도 화장실에 갈라치면 저 은행나무 덕에 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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