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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 입암면 왕심마을 지명

새터(新基) : 1970년대 후반 농촌 대규모 차관사업으로 조성된 터새터골(新基洞) : 왕심마을의 본터는 큰동네이며 서쪽방향 야산너머 조성된 곳이 새터골배나무골 : 이목동, 오얏나무골, 새터골에서 서쪽방향의 골짜기.버드네골 : 유목동, 버드나무골, 절 입구 방죽있는 부근붉은 댕이 : 왕차길(왕심리-차단길)을 따라 지선리 넘어가는 언덕, 황토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자 단곡리의 유래.웃시암골 :  큰동네 뒷산골짜기로 바위에서 샘이 솟는 곳시암고랑 : 웃시암골 윗쪽아랫시암골 : 큰동네 느티나무 아래 샘터(단곡리164-8답). 지금은 주택이 들어섰다.반송등 : 시암고랑의 능선탑골 : 지선리 순흥안씨 선영범박골 : 원천리뒷산 과거 휘기공 묘소가 있던 곳.피난골 : 임진난 때 피난했다는 골짜기. 비룡촌에서 순흥안씨 ..

[향토사] 일제강점기 조선의 일본인들

논평은 생략하고 1915년 조선총독부의 임시토지조사국이 실시한 지적도를 기반으로 전북 정읍군 입암면 일대에 정착한 일본인들에 대한 기록을 사료연구차원에서 작성한다. 표기로 분류할 때 총 44명이다. 출처 : 1915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 지적원도(국가기록원 지적아카이브), 조선총독부 전라북도조사재료(서울대 규장각 지리지종합정보) 1910년 총독부 전라북도조사재료에 따르면 당시 서일면(입암면 전 이름) 지역은 총 638호 가구, 남1,475명 여1,209명으로 총 2684명이 거주한 것으로 조사됐다. 전북 948,282명 정읍군 19,564명이다.한편 1911(메이지 43년)년 10월 조사에서는 천원리에 3가구, 남2 여4명 총 6명의 일본인이 거주한 것으로 돼있다. 이같은 현황은 1915년 지적조사에..

[족보] 진안대군의 가족과 그 사위 도정공 안종렴

1. 진안대군의 가족관계1) 진안대군은 태조 이성계의 맏아들이다. 조선 왕조의 종실족보인 선원록에는 진안대군의 부인은 충주지씨이고 2남 1녀를 두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장남 이복근(봉녕부원군), 차남 이덕근(원윤), 장녀 옹주(이숙묘의 처)이다.2) 조선왕조는 조선 왕조의 족보인 선원록, 종친의 기록을 담은 종친부, 첩과 서얼을 기록한 유부록 등 3체계로 작성됐다. 3) 태종실록에는 차남 원윤 이덕근이 사망하자 이를 얼자로 언급하는 기록이 있으며 진안대군의 딸 이숙묘의 처와 안종렴의 처를 옹주에 봉한다는 기록이 있다.4) 태조대왕의 유부록을 보면 이숙묘의 처가 먼저 기록에 등장한다. 차남 원윤 이덕근은 얼자로 언급됐음에도 다른 표기 없이 장남 복근 다음에 기술돼 있다.5) 즉 진안대군은 충주지씨의 소생으..